십자가(0,1)복음방송

하나님 흥에 겨운 다윗의 막춤_태승철

작성일
16-05-28 12:07
작성자
태승철
조회
9,202

춤과 무용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과 영화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블랙스완'을 대비시키면 알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춤은 춤 추는 자 자신에게 일어나는 흥겨움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무용수는 관객에게 흥을 돋우려는 피나는 노력 끝에 그들의 반응을 보고 비로소 흥을 느낍니다. '춤춰라, 아무도 보고 있지 않는 것처럼' 이 말이 무용에는 어울리지를 않는 것이지요. 다윗의 막춤. 여기서 일상의 몸과 춤추는 몸의 구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흥에 겨운 다윗의 막춤

(사무엘하 6:12~23)

 

 

12.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13.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14.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15.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16.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17. 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준비한 자리에 그것을 두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니라

18.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19. 모든 백성 곧 온 이스라엘 무리에게 남녀를 막론하고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덩이씩 나누어 주매 모든 백성이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오늘 본문 중심으로 <하나님 흥에 겨운 다윗의 막춤>이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하나님 흥에 겨운 다윗의 막춤

발레를 소재로 한 블랙스완(Black swan)”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뉴욕 발레단의 프리마돈나 니나는 연약하지만 순수하고 우아한 백조 연기로 손꼽히는 최고의 발레리나였습니다. 그런데 감독인 토마스가 백조의 호수를 각색하여 백조와 흑조를 동시에 출연하는 12역으로 구상하여 니나에게 맡기게 됩니다. 그런데 니나가 완벽한 백조 연기와는 다르게 흑조로서의 도발적인 표현에 대해서는 어설펐습니다. 더구나 새로 입단한 릴리는 니나처럼 기술이 정교하진 않았지만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관능적인 매력을 뿜어내면서 발레단 내에서 니나와 비교되며 흑조의 역할에 더 잘 맞는다는 의식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에 주인공 니나는 점점 중압감과 강박의 증세가 심해지면서 환각까지 보게 됩니다. 영화는 이러한 니나의 내면의 고통을 신체상의 고통으로서 상징적으로 표현하여 멍이 들거나 피가 나고 발목이 부러지기까지 하는 과정을 통해 자아분열의 과정을 통해서 흑조로 변해갑니다. 그렇게 완벽하게 무대를 마치고는 나는 완벽했어(I am perfect).’라는 대사를 하게 됩니다. 완벽한 표현을 위해서 쥐어짜듯 훈련을 하고 자기가 원하는 완벽한 발레리나에 도달하게 된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실지 인물로 유명한 빡빡머리 안 은미 무용가(53)가 계십니다. 이 분은 무용가로서 무대에서 춤을 추기도 하지만 일반인들을 무대 위에 세우기도 합니다. 할머니, 중년 남성, 십대 청소년이 무대 위에 올라오면 거의 막춤을 추게 되는데 이러한 공연을 기획한 의도에 대해서 기자가 물었지만 전혀 전문가다운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안 은미 씨의 어머니가 관광버스에서 뽕짝에 맞춰서 춤을 추면서 자기에게 엄마가 춤을 잘 추지?’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한 질문을 받은 안 은미 씨는 정말로 춤을 잘 춘다.’는 것은 무엇이고 한국인의 춤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궁금해 하던 중에 춤은 해방공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한국 사람들의 회식자리, 노래방 등에서 추는 춤은 거의 막춤인데 이것이 해방의 공간이고 해방의 수단이며 해방의 순간으로, 한국의 춤은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형식에 매여 있지 않고 당장 신 내림을 받아서 트랜스 상태에서 춤을 출 뿐이라는 것입니다. 술에 취한 사람이 술기운에 지배되듯이 그저 흥에 겨워서 어깨를 덩실거리며 흥겨움에 지배된 채로 몸을 놔두는 것입니다. 그러한 아이디어를 관객들에게 접목한 것인데 이 분이 2016년에 한불 문화상을 수상하셨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르몽드지가 안 은미 씨의 춤을 한국사회를 응축하고 있다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합니다. 이분이 출연자들에게 막춤을 추게 하면서 유럽을 휘젓고 다니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관광버스에서 추던 막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관객들 중에 할머니나 중년 남성이나 십대 청소년들의 지원자를 받아서 막춤을 추게 하는데, 이 무대가 2018년까지 유럽에서의 공연 스케줄이 꽉 찼다고 합니다.

이렇듯 영화 블랙스완에서 나오는 니나와 안 은미 씨는 똑같이 춤을 추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차이가 나는데 이것이 춤과 무용의 차이일 것입니다. 막춤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흥겨움에 몸이 지배를 당하는 것입니다. 안 은미 씨의 어머니가 아무 때나 관광버스에서처럼 춤을 추었던 것처럼 춤이 삶이었던 것입니다. 춤과 일상이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이 바로 한국 춤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 다윗도 이런 막춤을 추었습니다. 다윗이 법궤가 옮겨지는 행렬 앞에서 춤추는 것을 보고 사울의 딸, 다윗의 아내 미갈은 업신여기며 비난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서도 축제 때에는 춤을 추었는데 다윗의 이러한 모습은 신하의 계집종들이 추는 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춤을 추며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다윗을 비난하는 미갈에 분노하셔서 아이를 허락하지 않으시는데 이러한 다윗의 막춤이 뜻하는 바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다윗이 이전에는 군인들 삼만 명을 뽑아서 법궤를 옮기려 하였습니다. 이전부터 법궤를 가져오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다윗 또한 그렇게 행동했던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 즉 만물의 명령자이신 여호와를 전쟁의 주인으로 이해하여 법궤를 전쟁과 연결을 시켰던 것입니다. 그래서 군인들을 보냈던 것이고 자신은 왕으로서 앞으로의 전쟁에서의 순조로운 승리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웃사가 죽자 그 기대가 좌절되어 마음에서 분노가 생기게 됩니다. 이 분노는 여호와 하나님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계획이 좌절됨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분노를 폭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돌부리를 걷어차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다윗은 제사장이 입는 베로 만든 에봇을 입었습니다. ‘에봇은 순결을 말하고 땅에 대한 어떠한 목적의식도 갖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에서 백의도 나라로부터 어떠한 벼슬도 받지 않음을 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의 정하신 규정대로 레위인들로 하여금 법궤를 메고 오도록 하였는데 그 앞에서 춤을 추며 여호와 앞에서 뛰놀았습니다. ‘뛰논다.’라고 표현된 모습은 블랙스완에서 니나가 고군분투하는 모습보다는 안 은미 씨가 유럽 무대에 올린 막춤에 가까울 것입니다. 이렇듯 흥에 겨워서 여호와 앞에서 뛰노는 막춤이 신앙인들의 일상의 몸짓이 되어야만 하는데, 우리가 직장에 나가서 일하는 것도 다윗의 막춤을 추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지금 여기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다윗의 막춤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여 흥에 겨운 막춤을 추며 살아갈 수 있는지 오늘 본문에서 답을 줍니다.

 

학자들이 해석하기 어려워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다윗은 레위인들로 법궤를 메고 옮기는 중에 왜 여섯 걸음을 가서 멈추고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렸던 것일까요? 일반적인 견해로는 이전의 실패를 염두에 두고 여섯 걸음마다 하나님의 분노하심을 확인하고 감사하여 제사를 드렸다고 이해를 합니다. 그런데 성경 자체로 이해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법궤에 대해 6:2절에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라고 합니다. 즉 법궤는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키는 상징물로 여기서 말하는 만군이란 천군천사를 뜻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모든 만물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요점은 하나님께서 만물에 대해서 명령권을 갖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왜 레위인들이 여섯 걸음을 걷고 일곱 째 걸음 대신에 제사를 드렸던 것일까요?

다윗은 지난 실패를 통해서 만군의 여호와가 뜻하는 바를 깨닫고 그 깨달음을 퍼포먼스를 통해서 나타낸 것입니다. 걸음을 뜻하는 스텝은 단계라는 말로 쓰기도 합니다. 여섯 단계가 지나고 일곱 번째 단계에서 제사가 드려졌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인데 육일동안의 창조를 여섯 단계로 표현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하면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만군의 여호와이신 이유는 육일동안에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에 대해서 명령권을 가지고 계신 점을 다윗은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전에는 법궤를 어떻게 생각했느냐면 그런 명령권자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법궤만 가지고 있으면 왕으로서 치러야할 전쟁에서 마땅한 승리로 기대하고 이해했습니다. 이것이 좌절되어 화도 냈었는데 이번에는 법궤의 의미를 분명히 깨닫고 행동하게 됩니다. 법궤가 하나님을 가리키는 상징물인데 법궤 안에는 말씀의 돌판이 들어있고 말씀의 돌판이 뜻하는 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인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판단과 하나님의 명령이 있으심을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돈을 상대할 때에는 돈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이 있음을 깨달아야 하고, 아내를 상대할 때에는 아내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업 할 때에도 사업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이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사업을 성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명령이 되어서 내 뜻을 복종시키고 내 뜻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만 하면 어떤 점에서 2%가 부족하냐면 성공하고 싶을 때에 내 뜻에 하나님의 뜻을 붙이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먼저 소원한 것이 있고 그 소원하는 것이 성취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붙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이 있기 때문에 내 뜻은 설 자리가 없어지는데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내가 손으로 만지고 대하는 모든 사물과 사람과 상황과 사건에 대해서 하나님의 명령이 있음을 인정하는 순간까지는, 블랙스완의 리나와 같은 입장으로 감독이 만들어 놓은 흑조의 캐릭터를 내가 표현해 내야 합니다. 기독교의 율법을 내가 몸을 통해서 행동해야만 하는 점에서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자로서 나의 주체가 부인될 때에 이상하게도 하나님이 내 안에 주어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나는 하나님의 명령권자 되심을 인정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들어오시면서 하나님으로 인한 흥겨움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섯 걸음 후에 드려진 제사도 바로 이것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부인되고 여섯 단계에 걸쳐서 창조된 모든 것들에 하나님의 명령이 있음을 깨닫는 것인데 여기서 드려진 제사가 번제인지 화목제인지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사가 드려졌다는 것은 모든 제사를 공통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의미에서의 제사가 드려졌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제사가 의미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갖는 것입니다. 속죄제는 하나님을 가지기 위해서 죄의 더러움을 없애는 것이고, 번제는 하나님 외에 무엇인가를 갖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이 죽는 것이고 화목제는 하나님을 가져서 친해짐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업을 한다면 그 사업에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기 때문에 내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든지 내 뜻은 백지화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내 주체가 죽어버릴 때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 때문에 흥겹게 됩니다.

 

미국의 시인 알프레드 디 수자(Alfred D'Souza)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이라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내가 회사에 다니는 사람일지라도 사장님의 명령이 아닌 하나님의 명령으로 업무를 받아들이면 나의 주체가 부인되고 하나님이 들어오시게 됩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창조의 여섯 단계 안에 포함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서 하나님의 명령이 있음을 깨닫고 내 주체성을 부인하면 제사가 뜻하는 바대로 하나님을 갖게 됩니다.

블랙스완 영화에서 니나는 흑조를 표현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것 같이 회사에서 성과를 만들기 위해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이 하나님을 갖게 될 때에 다윗의 막춤이 되고 안 은미 씨의 막춤이 됩니다. 유럽 사람들이 안 은미 씨의 춤에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흥겨움을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절제된 모습의 발레를 보면서 감동을 받지만 안 은미 씨의 춤을 보면 해방감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율법을 이루려고 한다면 블랙스완의 니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하나님의 명령임을 깨닫고 나의 주체성을 죽이면 하나님을 갖게 되고, 하나님 때문에 흥겨워서 나오는 모든 막춤이 율법에 다 맞게 됩니다. 블랙스완의 니나처럼 감독이 제시한 흑조라는 율법을 이루기 위해서 몸부림을 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가져서 하나님으로 인해 흥겹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통해서 내 삶에 대해서 판단하려고 하는 기질자체를 죽이는 것입니다. 내가 대하는 모든 사물에 대해서 하나님을 명령권자로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가지면 하나님으로 흥겨워서 사물을 관계하게 되고 나의 일상은 다윗의 막춤이 됩니다. 이제 삶이 막춤을 추는 뮤지컬로 살아야 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도와주세요.

십자가 생활화를 통하여 내가 관계하게 되는 모든 대상들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권이 인정됨으로서 하나님 갖게 하셔서 하나님의 흥에 겹게 하시고 그리하여 나타나는 모든 행동이 다윗의 막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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