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0,1)복음방송

에덴에는 숯불구이가 없었다_태승철

작성일
16-06-21 11:48
작성자
태승철
조회
7,669

말만해도 침이 흐르네요. 소갈비, 돼지갈비, 바베큐, 오리, 닭, 생선 등등. 숯불구이의 종류도 맛도 참 다양합니다. 그러나 에덴에는 숯불구이 없었습니다. 지속적으로 흐르고 있는 내 삶의 순간들을 구워서 만족과 기쁨과 행복이라는 맛을 먹는 일에서 결코 숯불이 동원 되지 않았다는 말씀이지요. 타락 후 인간의 비극은 삶의 숯불구이에서 비롯합니다. 삶의 시간은 날것으로 계속 석쇠 위에 얹히고 있는데, 정해진 숯불은 벌써 다 타버려서 하얗게 재가 되어 버린 겁니다.

에덴에는 숯불구이가 없었다

(사무엘하 22:8~20)

 

 

8. 이에 땅이 진동하고 떨며 하늘의 기초가 요동하고 흔들렸으니 그의 진노로 말미암음이로다

9. 그의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

10. 그가 또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니 그의 발 아래는 어두캄캄하였도다

11. 그룹을 타고 날으심이여 바람 날개 위에 나타나셨도다

12. 그가 흑암 곧 모인 물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둘린 장막을 삼으심이여

13. 그 앞에 있는 광채로 말미암아 숯불이 피었도다

14.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우렛소리를 내시며 지존하신 자가 음성을 내심이여

15. 화살을 날려 그들을 흩으시며 번개로 무찌르셨도다

16. 이럴 때에 여호와의 꾸지람과 콧김으로 말미암아 물 밑이 드러나고 세상의 기초가 나타났도다

17. 그가 위에서 손을 내미사 나를 붙드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18.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그들은 나보다 강했기 때문이로다

19. 그들이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20.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셨도다

 

 

오늘 말씀 중심으로 <에덴에는 숯불구이가 없었다>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에덴에는 숯불구이가 없었다

숯불구이라는 말이 너무 뜬금없어 보이는데 이 말이 나오게 된 이유는 9절과 13절에 숯이 피었도다, 숯불이 피었도다라는 말이 반복되는 것에 기인합니다. 오늘 다윗의 노래의 내용을 보면 표현들이 상징적이어서 혼란스럽습니다. 그리고 명확하고 통일된 주제의 흐름을 알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전체의 내용을 하나로 통일되게 이끌어 가는 말이 두 번 반복되는 숯이 피었도다, 숯불이 피었다는 단어에서 노래의 주제를 찾을 수 있습니다.

독일에서의 유학시절에 한국 유학생들이 몇 십 명 있었습니다. 초여름이 되면 고추장양념을 한 삼겹살 숯불구이 파티를 했는데 맛이 기가 막혔습니다. 그런데 숯불 피우는 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대부분 집에서 쓰다 남은 것들을 가져 오기 때문에 고기가 남았는데도 숯이 모자라서 쩔쩔 맬 때도 있었습니다. 집 뒤뜰이나 기숙사 혹은 야외로 나가면 피크닉 에어리어가 있어서 숯불구이를 할 수 있었는데, 숯이 떨어지게 되면 30~40분이나 떨어진 시내의 마트까지 가서 사와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숯불구이를 비유적으로 적용해서 제목의 에덴에는 숯불구이가 없었다.’는 얘기를 한 번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간순간 주어지는 삶의 상황들이나 문제들을 대처하며 살아가는데 그것이 삶의 내용이 됩니다. 지속적으로 다가오는 그 삶의 순간들을 기쁨과 만족과 감사 속에서 행복과 평강으로 지속하려면 그 순간들을 무언가로 구워서 요리를 해야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담고 있는 삶의 순간들은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몰려오는 반면에 내가 가지고 있는 숯불은 조금 시간이 지나면 재로 변합니다.

예를 들면 기쁨과 만족과 행복을 맛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돈은 나의 숯불입니다. 그래서 돈을 십억 모았다면 이제 내 삶에 계속 다가오는 모든 순간들을 기쁨으로 구워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십억을 벌었을 때는 확 달아오릅니다. 그 순간에 기쁨으로 숯불구이가 되어서 기뻐하고 있었는데, 자식 문제가 터지고, 아내에게 문제가 생기고, 건강 등에 문제가 생깁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돈 십억을 가지고 기쁨과 행복과 평강으로 구워낼 수가 있겠습니까?

에덴에서는 삶의 순간들을 기쁨과 만족과 행복과 감사함으로 구워내는 연료로 피조된 세상의 것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피조된 세계에서 삶의 순간을 기쁨으로 구워내기 위한 재료들이 숯과 같이 수명이 짧기 때문입니다. 에덴에서는 지속적으로 주어지는 삶의 순간들을 기쁨과 만족과 행복으로 요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기쁨의 동산인 에덴이었습니다. 기쁨으로 지속되는 삶을 위해서 에덴에서는 숯불이 아닌 마치 지금의 도시가스나 전기와 같이 지속적인 연료를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해도 맛깔스럽게 감이 잡히지 않아서 본문을 들여다봅니다.

어제 우리가 나눈 말씀에서처럼 이 세상은 무대입니다. 내가 사장이라면 사장의 역할로 삶의 무대에 올라서는 것이고, 목사는 목사의 역할로 삶의 무대에 섭니다. 엄마나 아빠 학생도 선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절대로 나의 인격적 주체를 삶의 무대에 올리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다윗은 무조건 이 삶의 무대를 도피해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 도망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될 때에 내 삶과 육체는 그대로 있지만 주체가 바뀝니다. 내가 도망한 빈자리에 하나님의 인격의 주체성이 들어오십니다. 그 때에 나를 둘러쌌던 세상과 하나님의 마음이 만나게 되고 하나님과 세상이 만나게 됨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이 세상이 드러나고, 세상에서의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서로가 서로에 대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8절에 이에 땅이 진동하고 떨며 하늘의 기초가 요동하고 흔들렸으니 그의 진노로 말미암음이로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늘과 땅은 위에 하늘이 있고 발로 땅을 딛고 사는 것은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견고한 것으로 여깁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마음에서 분명히 그것만 가지면 기쁘고 만족할 것이라고 확신을 갖고 생각하는 대상들의 기초입니다. 이것만 있다면 요동함 없이 기쁠 것으로 믿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그것들을 갖지 못해서 불평과 불만도 생기게 됩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하늘로 도피하지 않고 삶의 무대 위에 서서 어떤 사람은 즐기고 있고 어떤 사람은 무대공포증을 극복하고 겨우 올라가서 너나 할 것 없이 이 세상이라는 무대에 붙잡혀서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세상의 특징을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어느 것 하나 불안하지 않고 요동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그것들을 붙잡고 지속적인 기쁨과 행복을 얻으려고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에 대해서 9절에 그의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라고 하시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것들에 대해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라고 하는 말은 앞서서 말씀드렸던 것인데 이것만 있으면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삶의 순간들을 기쁨으로 만족으로 구워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즉 돈 건강 자녀의 형통 등과 같은 것들이 다 숯이라는 것입니다. 한 순간 숯불이 타오를 때에 다가오는 삶의 순간들은 혹 기쁨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오시고 하나님 앞에 있는 세상은 마음이 이 세상 무대 위에서 활보하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행복과 기쁨과 만족의 기초로 생각했던 모든 것들은 숯불에 불과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삶의 순간은 계속해서 석쇠에 올라오는데 기쁨의 확실한 연료로 믿었던 것들은 잠시 후에 다 하얀 재가 되기 때문이고, 삶의 순간들은 계속 날 것으로 석쇠위에 얹히므로 이 삶을 기쁨으로 구워내지도 못하고 걱정과 근심과 우울과 원망과 불평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 외에는 삶의 순간들을 기쁨과 행복으로 구워낼 어떠한 불도 존재하질 않습니다.

마치 모세를 부르셨을 때의 떨기나무 불꽃과 같습니다. 떨기나무가 불타고 있었지만 재가 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재가 되지 않는 불은 하나님에게서만 나옵니다. 모세는 무대 위에 올라섰던 것이 아니라 무대로부터 내려와서 하나님께로 도망쳤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애굽으로 가서 백성들을 데리고 나오라는 소명을 주셨을 때에, 모세의 마음은 애굽으로 달려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도망했습니다. 그럴 때에 모세의 빈자리에 하나님께서 오셔서 모세가 당면하는 모든 순간들과 마주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기쁨과 만족과 평강과 감사의 조건이 되셨지만, 애굽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기쁨과 만족과 평강의 근거였던 물이나 농사나 장자를 쑥대밭으로 만드셨습니다.

 

그 다음 말씀을 보면 또 다시 숯불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10~13절에 그가 또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니 그의 발 아래는 어두캄캄하였도다 / 그룹을 타고 날으심이여 바람 날개 위에 나타나셨도다 / 그가 흑암 곧 모인 물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둘린 장막을 삼으심이여 / 그 앞에 있는 광채로 말미암아 숯불이 피었도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셨다는 것은 하늘이 땅에 가까이 근접하여 내려온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마4:17절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신 것처럼 하늘이 마치 허리를 굽히듯이 땅에 접근하자 그의 발 아래는 어두캄캄하였도다라고 합니다. 지금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의 품에 안겨서 세상을 보자, 여전히 사람들이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는데 70억 사람의 판단과 분별과 깨달음이 전부 어둡고 틀린 것들뿐이고 밝음이 없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판단이 틀리는 이유가 11절에 그룹을 타고 날으심이여 바람 날개 위에 나타나셨도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람을 타고 움직이시는 영으로 표현됩니다.

12절에 그가 흑암 곧 모인 물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둘린 장막을 삼으심이여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은 장막으로 가려져서 하나님이 보이질 않습니다. 사람들의 판단이 틀리는 이유는 바람을 탈 수 없기 때문이고 바람을 타지 못하는 것은 가라앉기 때문입니다.

사장님은 돈에 빠져서 삶의 모든 순간을 행복하게 구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돈은 숯불같이 일시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문제는 돈을 마음속에 갖고 있으면서, 이 돈이 있어야 기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고 만족할 수 있다고 믿게 될 때에 삶을 바라보면서 갖게 되는 모든 판단이 다 어둠속에 있게 됩니다. 우리가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는 바다에 떠 있는 비치볼처럼 닿았으되 빠져서는 안 됩니다. 내가 손으로 돈을 만지지만 마음이 돈에 빠지지 않아야만 돈과 관계된 일에서 올바른 판단이 주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돈에 빠져 세상을 바라본다면 접하는 모든 사건에서 틀린 판단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돈을 많이 벌어서 이제 내 인생이 잘 되고 꽃핀다.’는 생각자체가 잘못된 판단입니다. 반대로 돈이 안 벌려서 인생이 안 풀린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판단인데 모두 캄캄한 가운데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내 마음이 자녀에 빠져서 자녀가 잘 되는 것만을 기쁨의 근원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자녀에 대해 어떤 판단을 하더라도 다 오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녀가 서울대에 들어가는 것이 좋아서 열심히 가르쳐서 서울대를 보냈을지라도 잘못된 것이고 오해에서 시작한 일입니다. 사람의 판단 자체가 숯불입니다. 돈이 좋다는 판단에 따라서 돈을 벌기 위한 1020년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이미 돈은 하나님 앞에서 불타서 재가 된 가치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잿더미를 근거로 1020년의 계획을 추진하고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오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처럼 세상이라는 무대를 기피하고 도망쳐서 하나님께로 가서 마음이 머물러야 합니다. 마음이 세상에 머물면서 하늘처럼 땅처럼 견고하게 여겨지는 가치들을 끌어안아봐야 그것들은 얼마안가 재가 될 숯덩이에 불과한데, 그런 것을 마음이 품고 순간순간 판단하고 소원하는 모든 것들은 오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4~16절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우렛소리를 내시며 지존하신 자가 음성을 내심이여 / 화살을 날려 그들을 흩으시며 번개로 무찌르셨도다 / 이럴 때에 여호와의 꾸지람과 콧김으로 말미암아 물 밑이 드러나고 세상의 기초가 나타났도다라고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우렛소리를 내시며 지존하신 자가 음성을 내신다.’는 것은 결국 내 삶의 방향과 계획은 하늘에서만 들려오는 것이므로 이 땅에서 얻으려고 하고 판단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땅에서 무엇인가를 마음에 품고 그것을 얻겠다고 생각하거나 그것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화살을 날려 그들을 흩으시며 번개로 무찌르셨도다라는 말은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은 세상이 가진 가치에 대해 역설하며 내 마음을 빼앗아가려고 끊임없이 공격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도망가 있을 때에만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들려옵니다.

이럴 때에 여호와의 꾸지람과 콧김으로 말미암아 물 밑이 드러나고 세상의 기초가 나타났도다라고 하는데 내 인생의 진행 방향과 길도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홍해가 갈라지고 땅이 드러난 것과 같습니다.

이 세상의 나라 간에 대한 얘기나 뉴스나 드라마나 영화나 사람을 만날 때나 크고 작은 일들이 내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하나님께로 도망가면, 하나님께서 나의 빈자리에 오셔서 그 음성이 하늘에서의 우렛소리처럼 퍼져나가게 됩니다.

빛이 있으라.’고 하시니 빛이 있었고 뭍이 드러나라고 하시니 그대로 된 것과 마찬가지로 내 마음이 도망간 자리에 오신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길을 열어 가실 것입니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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