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0,1)복음방송

하나님과 친한 정도 측정법_태승철

작성일
16-08-21 15:12
작성자
태승철
조회
7,630

선민과 이방인의 차이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유무일 것입니다. 그러면 공통적으로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선민끼리는 무엇이 차이를 만들어 낼까요? 바로 하나님과 친한 정도입니다. 하나님과 친한 정도를 측정할 수 있음이 신앙의 진보를 이루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하나님과 친하면 친할수록 삶에 나타나는 샬롬의 파장과 범위는 커집니다. 우리가 평생 마음 먹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야 할 일이 다름 아닌 매일 매일 하나님과 좀 더 친해지기입니다.

하나님과 친한 정도 측정법

(열왕기상 15:1~34)

 

 

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 왕 열여덟째 해에 아비얌이 유다 왕이 되고

2. 예루살렘에서 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아가요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3. 아비얌이 그의 아버지가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의 마음이 그의 조상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나

4.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의 아들을 세워 뒤를 잇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하셨으니

5.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

6.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사는 날 동안 전쟁이 있었더니

7. 아비얌과 여로보암 사이에도 전쟁이 있으니라 아비얌의 남은 사적과 그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8. 아비얌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니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과 친한 정도 측정법>이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하나님과 친한 정도 측정법

지금 내게 제일 친한 대상이 누구입니까?

삼강오륜 중에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은 천륜에 의해서 가장 우선적인 대상으로 정해져 친할 수밖에 없습니다.

친하다는 말의 핵심적인 의미는 가깝다는 것입니다. 친할 친()의 한자를 보면 나무 위에서 바라본다.’리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무 목() 위에 설 립()이 있고 그 옆에 볼 견()이 있습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어차피 올 사람이면 집안에 있으면서 내 일만 하고 있어도 오게 되고 만나게 될 것이지만, 올 때까지 있을 수 없어서 동네 어귀에 있는 높은 나무에 올라가서 빨리 보고 싶어 고대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친하다는 말을 하나님께 적용할 때에도 같은 의미에서 하나님과 가깝다는 뜻이 됩니다. 내가 하나님과 친한 것이 어느 정도로 가까운가를 측정할 수 있다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까우면 반드시 우선성이 나타납니다. 내 마음으로부터 거리를 잴 때에 가까이 있을수록 친한 것인데 가까이 있을수록 내 마음은 우선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 우선적으로 만나기 때문에 내 마음의 상태를 결정합니다. 친한 대상이 내 마음의 상태를 결정하고, 친하지 않은 상대들에 대한 마음도 제일 친한 상대와 만났을 때의 결정된 마음으로 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침에 아내와 싸우고 직장에 간 남편들이 있습니다. 제일 친한 상대인 아내와 싸우고 나갔기 때문에 그 다음에 만나는 대상들과는 마음이 우울하고 불편한 상태로 만나게 됩니다. 또 자녀가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의 마음은 직장에 가서 사장님께 꾸지람을 들어도 돌아서면 웃을 수 있습니다.

선민과 이방인의 차이는 믿음의 여부로 구분됩니다.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선민들의 차이는 하나님과 얼마나 친한가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제일 친한 대상이 되라고 부르심 받은 자들이 선민입니다. 친하면 더 가깝기 때문에 언제나 마음이 우선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친함을 측정한다면 하나님이 내게 다른 무엇보다 가까운가를 측정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무엇보다 내 마음이 우선적으로 만나는 대상인가를 살펴보면 되는데, 친한 것은 가까움을 말하는 것이고 우선적임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선적이라는 것은 언제나 모든 다른 대상들을 만나기 이전에 내 마음의 상태를 결정하기 때문에 친밀의 정도를 측정하는 것은 가까움과 우선성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하고 가까웠느냐?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독자 이삭을 제단 위에 올려 죽이려고 했습니다. 독자 이삭보다 하나님이 더 우선적이고 가까이 계셨습니다. 더 이상 친밀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친밀했던 것입니다.

다윗의 하나님과의 친밀함은 어떻게 측정할 수 있습니까? 무시무시한 골리앗이 불호령을 하자 사울 왕 이하 이스라엘의 전군이 심리전에서 져서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만 사울 왕과 이스라엘 군대의 마음에는 하나님보다도 골리앗이 더 가까웠습니다. 어린 목동 다윗에게는 골리앗보다도 하나님이 더 가까이 계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우선적으로 만났고 그 우선적 만남에서 다윗의 마음 상태가 결정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만난 상태에서 결정된 마음가짐으로 골리앗을 보자 할례 받지 못한 돌멩이 하나로 없앨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보였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것이 이렇게 엄청난 차이를 우리의 삶에 나타냅니다.

하나님과 친하면 친할수록 하나님과 가깝고,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선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우선적으로 만나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난 마음상태로 이 세상의 삶을 대하기 때문에 친밀함의 정도에 따라서 삶이 완전히 다르게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안 계시는 것도 아니시고 안 보이시지도 않습니다. 눈에 안 보이실 뿐이지 마음에는 보이십니다. 안 계시는 것이 아니고 친하지 않기 때문이고 눈에 안 보이는 것처럼 마음에서도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십자가의 예수님이나 하나님을 잊고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정이 급박하다고 해서 잠시 잊어도 되는 분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바쁘다고 해서 하나님을 잊는 것은 지금 닥친 일이나 상황보다 하나님이 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변명하지 않아야 변화와 수정이 있고 고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삶의 현장에서 접하는 일이나 대상들이 하나님보다 내 마음에 더 가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잠시라도 잊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나 사도들이나 초대 교회 순교자들을 보면 어느 정도로 하나님과 친했습니까?

자기 마음에 자신의 육체보다도 하나님이 더 가까이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신의 몸을 내주셨고, 순교자들이 사자 밥이 되거나 화형을 당하면서까지 믿음을 지켰던 것은 자신의 육체보다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마음에 더 가까이 계셨고 더 우선적이었던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만난 상태의 결정된 마음으로 달려드는 사자를 보고, 매달려 불에 타 죽으면서도 십자가를 바라보았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남북 왕국으로 갈라져서 북 왕국에서는 여로보암이 왕이 되었고, 남 왕국 유다에서는 솔로몬이 죽고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습니다. 이들을 시작으로 북 왕국 이스라엘은 250여 년간 남 왕국 유다는 400여 년간 왕들이 이어져 나갑니다.

남 왕국 유다의 왕들은 다윗 가문의 핏줄이 이어져 가는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온전치 못한 왕들이지만 그 왕들의 자손들로 왕위를 잇게 하시는데 하나님께서 다윗과의 언약에 긍휼과 자비를 베푸신 신실하심이고, 이 땅에 오실 메시야를 담을 그릇을 준비시키시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 왕국 왕들도 북 왕국 왕들과 다름없이 왕위에서 끌어내려야 할 자들이지만 은총으로 다윗의 자손이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반대로 북 왕국에서는 250여 년 동안 무려 9개의 왕조가 바뀌게 됩니다.

남북 왕국의 모든 왕들이 선민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왕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가를 분별하는 기준이 있었는데 다윗의 길과 여로보암의 길이었습니다. 다윗의 길은 하나님과 친한 방향으로 움직여간 사람들이고, 여로보암의 길은 하나님과 친하지 않고 이 세상 땅의 것들과 친한 방향으로 움직여간 사람들입니다.

 

본문에는 네 명의 왕들의 이름이 거론됩니다. 남 왕국 유다의 아비얌과 아사, 북 왕국 이스라엘의 나답과 바아사입니다. 네 왕 중에서 세 왕이 여로보암의 길로 갔는데 남 왕국 유다의 아비얌조차도 여로보암의 길을 걸었고 3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남 왕국 유다의 3대 왕인 아사의 이야기를 통해서 본문이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님과 친한 정도의 측정기준을 다윗의 길로 적용해 보고 활용해 보라는 것입니다.

아사 왕은 유다 역사에서 종교개혁을 가져온 네 명의 왕 중에 첫 번째 왕이었습니다. 모든 우상을 파괴하고 심지어 할머니 마아가(압살롬의 손녀)가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자리에서 폐위시킵니다. 그 정도로 단호하게 우상숭배를 척결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사 왕이 통치하던 시절에 북쪽에서는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을 죽이는 유혈정변을 통해서 바아사가 왕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이 사람이 북 왕국의 내부를 수습하고 나서 곧바로 남 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에서 불과 6km 떨어진 라마성읍에 자기의 진지를 구축한 것입니다. 아사 왕이 정치를 잘하여 남 왕국이 평안해지자 북 왕국 사람들이 자꾸 남쪽으로 넘어갑니다. 그러자 그 길목에 있던 라마성읍을 요충지로 정하여 확장한 것입니다. 그러자 아사 왕이 성전과 왕궁에 모았던 금과 은을 아람의 벤하닷 왕에게 주며 북 왕국의 바아사 왕을 무찔러 줄 것을 부탁하는데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아사 왕이 그렇게 성실하게 모든 우상을 타파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을 재건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바아사 왕에 대해서는 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이방 왕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역대하 14장을 보면 이전에 아사 왕은 애굽을 지배했던 구스 왕 세라가 백만 대군을 이끌고 남 왕국 유다를 쳐들어 온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에 여호와 하나님께 의지하여 이들을 무찌른 적이 있었는데, 지금 북 왕국 이스라엘이 라마에 진지를 구축하는 상황에서 이방 왕에게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께 드려진 성전의 금과 은을 꺼내어 주면서까지 했는데 이것이 바로 친밀함 정도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백만 대군보다 하나님이 더 친밀했던 아사 왕이었지만, 수도 예루살렘 북쪽 6km지점에 북 왕국 바아사 왕이 진지를 구축한 땅의 상황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보다도 더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땅에 있는 일이 더 가까이 느껴져서 땅에 있는 벤하닷에게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또한 역대하 16장에서는 이 상황에 대해 선지자 하나니가 아사 왕을 비난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비난 없이 객관적 사실만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와 하나님의 친한 정도를 적용해서 측정해보라는 것입니다.

 

그 측정하는 또 다른 경우를 제시합니다. 아사 왕이 발에 병이 나서 의사를 부르는데 당연해 보이는 행동입니다만, 역대하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왜 여호와께 먼저 아뢰지 않았는가에 대해서 나무랍니다. 오늘 이러한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측정해보라는 것입니다.

내 몸에 병이 나면 목사도 장로도 집사도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먼저 의사를 찾게 되는데 내 육체가 내 마음에 대해서 하나님보다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원하는 것은 육체에 병이 났더라도 하나님이 더 가까이 계셨다면 하나님의 품에 안긴 상태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대책이나 방법이나 뜻이 알려졌을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 혹시 의사를 찾아가는 것이었을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몸에 병이 나면 하나님을 까마득히 잊고 약이나 병원부터 찾습니다. 또한 반대로 예수님이 병을 고치신 것처럼 기적적으로 병이 낫기만을 바라는 것 또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병을 고치는 기적을 일으키시는 이유는 하나님 당신을 드러내시기 위함이었지, 단순히 기적으로 병을 고치는 방법을 가르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병을 낫게 하시는 기적을 행하심으로 그동안 잊고 살았던 하나님이 병든 몸보다도 친한 존재임을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아사 왕은 철두철미하게 우상숭배를 척결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친밀함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수도 서울 6km지점에 이북의 김정은이 군사기지를 구축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혹은 지금 한반도의 사드배치 문제로 중국이 자국 내의 불리함으로 다급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구소련이 미국의 코앞인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구축하려고 하자 케네디가 강경하게 대응했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열왕기나 역대기를 기록한 믿음의 선배들이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그렇게 다급한 일이 있을 지라도 하나님이 먼저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바아사 왕이 수도 예루살렘 6km 지점에 군사기지를 구축하자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상황으로 인해 왕위와 나라를 지켜야 하는 책무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보다 마음에 더 가까이 느껴졌는데 아사 왕의 하나님과 친한 정도는 거기까지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친해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보다 먼저 이 세상의 대상이든 상황이든 마음에 와 닿을 때마다 십자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기억함으로 끊임없이 마음에 와 닿는 대상과 상황에 대해서 죽는 것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이전에는 두려움에 질식할 것만 같았던 상황이 닥치더라도 하나님에 의해서 마음이 결정되고 평강 가운데 그 일들을 맞이하는 나 자신을 보며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실패를 피하고 성공을 쥐려고 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과 친해지는 일에 매진해야 합니다. 일이 잘못 되었더라도 그 일에 대응하지 말고 그 일보다 하나님이 우선적으로 더 친한 대상이 되도록 십자가를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에 의해 마음이 결정되고 나면 그 일에 대한 정체가 드러나게 되는데 십중팔구는 새의 깃털처럼 가벼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심지어는 사자 밥이 되어서 몸이 죽는 것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질 정도로 하나님과 친한 사람이 되는 길이 십자가 생활화입니다.

하나님과 친해지는 일에 우리의 여생을 다 바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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