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0,1)복음방송

예수님 다시 살리기가 하나님 경외다_태승철

작성일
16-09-23 13:11
작성자
태승철
조회
7,940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듯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망으로부터 살려 내시고 부활의 주가 되시는 일은 너무나 자명한 일입니다. 그런데 내가 예수님을 다시 살린다는 말은 대체 무슨 망발인가 싶지요? 이처럼 어색하고 거북하고 낯선 말이 사실은 복음에 대한 믿음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복음의 근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음에 대한 반증이 되겠네요. 예수님 다시 살리기로부터 하나님 경외는 우리의 삶에서 실제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다시 살리기가 하나님 경외다

(열왕기하 4:8~37)

 

 

32.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33.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34. 아이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의 입에, 자기 눈을 그의 눈에, 자기 손을 그의 손에 대고 그의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35.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 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

36.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 저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이르되 네 아들을 데리고 가라 하니라

37. 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가니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예수님 다시 살리기가 하나님 경외다>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예수님 다시 살리기가 하나님 경외다

예수님을 다시 살린다.’는 말이 너무 어색하고 심지어 입이 삐뚤어져서 잘못 나온 망발같이 느껴지는데 그러나 예수님을 다시 살리지 못하면 하나님 경외는 불가능합니다.

어제 앞부분에서 아내와 두 아들을 세상에 남기고 엘리사의 제자가 죽게 되자, 두 아들이 빚으로 말미암아 종으로 끌려가게 된 상황을 과부가 엘리사에게 와서 상황을 털어놓았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구한 것도 아니며 엘리사도 무엇인가를 해줄 힘이 없었지만,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서 성경의 초점은 죽은 제자나 기름의 기적보다도 이 과부의 하나님 경외였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 경외라는 말은 너무나 자주 듣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감이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엊그제 경외가 무엇인가를 알만하게 실감나게 하는 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청주에서 일가족 자살사건이 있었습니다. 44살인 남편이 주유소 두 개를 경영하고 있고 아내는 40살이고 첫째 딸은 15살이고 둘째 딸은 12살입니다. 지인의 일확천금의 유혹을 받게 되어 몇 십억을 대출을 받아 투자를 했다가 다 날려버렸는데 사탄의 역사입니다. 최근의 상황은 빚에 대한 이자를 내기도 어렵고 주유소가 경매의 압박까지 겪게 되었습니다. 빚을 갚을 길이 막막해지자 두 딸과 아내와 남편이 질소가스를 마시고 죽었습니다. 이 현장을 외할아버지가 발견하게 되었는데 전화를 하도 안 받아서 와보니 손녀들과 사위와 딸이 죽어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현장을 통해 경외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경외는 없어지면 가장 두려운 것입니다. 너무 좋아하고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것이 없어지면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고 느끼는 대상이 경외의 대상인 것입니다.

이 불행한 사건은 돈 경외의 참혹한 결과이고, 돈 경외가 가져온 무시무시한 파괴력입니다. 어떻게 하면 부모가 앞날이 창창한 두 딸을 죽음으로 끌고 갈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돈 경외의 힘입니다.

만약에 휴가를 가서 두 딸이 물에 빠졌다면 엄마 아빠는 수영을 못해도 물에 뛰어들었을 것입니다. 돈 문제가 없이 평안한 마음으로 놀다가 그런 상황이 발생했더라면 자신들은 죽더라도 두 딸은 살려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모는 자신들의 목숨보다도 귀한 딸들을 왜 죽음으로 끌고 갔던 것일까요? 돈 경외의 마음 때문입니다. 돈이 없을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이것이 바로 경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경외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3:17~18절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고 합니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데 딱 여호와 한 분이 계십니다. 경외란 없어지면 차라리 죽고 싶은 상태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없어지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없어지고, 포도나무의 열매가 없어지고, 감람나무의 소출도 없어지고, 밭에 먹을 것이 없어지고, 우리의 양도 없어지고, 외양간의 소도 없어지고, 심지어 내 몸도 없어지겠지만 하나님은 없어지지 않으시므로 내 마음을 하나님께 두면 내 몸이 없어져도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다 없어져도 하나님은 없어지지 않으시는데 이 세상 것이 없어졌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에 자살이 죄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너무나 무시한 것입니다.

자살이 죄인 이유는 내 목숨이 내 것이 아닌데 함부로 끊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 보자면 하나님이 계신데도 세상 것이 없다는 이유에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세상만도 못하다는 것이고 하나님이 돈 몇 십 억보다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돈 몇 십 억과 하나님을 비교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여겼기 때문에 죄인 것입니다. 마음이 찢어지게 아픈 청주의 일가족 자살사건은 경외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경외에 대해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무엇으로 기뻐하고 무엇으로 만족하려고 하는가를 늘 진단해야 합니다. 이 요점을 놓치면 입으로는 하나님을 부르면서도 내 마음에서는 전혀 다른 것으로 기쁨과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데 여로보암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없어도 여호와로 즐거워하며 기뻐하리라는 하박국 선지자의 말처럼 내가 무엇으로 기뻐하려 하고 무엇으로 만족하려 하고 무엇으로 마음의 평강을 찾으려고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거꾸로 말하면 내가 지금 왜 걱정하고 왜 우울하고 왜 화를 내며 왜 원망하는가를 진단해내면 하나님 경외의 방향이 올바르게 잡힐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방향이 잡힌다고 그저 내 마음을 받으옵소서.’라고 노래하고 찬양하면서 기도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경외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준비하신 길이 있는데 오늘 본문이 그 길을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너무나 유명한 수넴 여인 이야기입니다. 앞서 나온 엘리사의 제자의 아내와는 다르게 아주 부유하고 잘사는 집안의 여인인데 이 여인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엘리사가 사마리아와 길갈을 지나칠 때에 이 여인이 엘리사를 모셔서 식사를 대접하곤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일이 반복되면서 남편에게 동의를 구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머물 방을 마련했습니다.

엘리사가 그 마음을 기특하게 여겨서 보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랴 왕에게나 사령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하니 그러나 여인은 아무것도 필요 없이 만족하게 살고 있고 나는 내 백성 중에 거주한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이 여인이 나이가 많은데 자녀가 없음을 엘리사에게 고합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이 여인에게 아이를 가질 것이라는 예언을 해줍니다. 물론 엘리사의 마음대로 한 일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던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태어났던 아이가 아직 어린데 아버지가 추수하는 곳에 나갔다가 일사병으로 죽고 맙니다. 그러자 수넴 여인이 급하게 엘리사를 찾아가서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니까 살려내라고 하소연을 합니다.

엘리사는 죽은 아이의 주검 위에 자신의 몸을 포개어 눈에 눈을 입에 입을 손에 손을 대서 아이를 살려내고 수넴 여인이 아들을 안고 가는 본문인데, 이 전체가 하나님의 의도와 설정이 들어있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는 그 때의 일일 뿐이었지만 우리들에게는 이 사건 전체가 하나님의 설교이자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비유를 제시하고 계시는데 바로 하나님 경외의 길을 가르쳐주시고 계십니다.

이 등장인물들에게는 하나님의 비유 안에서 각각의 역할이 있습니다. 굳이 나이 많은 여인에게 아들을 주시고 죽이시고 살리시는데 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이 아이가 태어나고 죽고 살아나는 것을 중심으로 해서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정해집니다.

이 사건 전체는 복음 사건의 비유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상태가 구원임을 뜻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이 없으면 더 살 필요를 못 느끼는 그 마음이 바로 구원받은 상태인데 그 구원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수넴 여인의 역할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아들을 향하신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의 역할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규정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경외는 아들을 살려내는 것입니다. 엘리사의 태도가 우리가 취할 태도인데 아들의 주검 위에 포개져서 살려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 복음 사건과 그 복음에 대한 믿음에 있어서 살려내다라는 말이 무슨 의미를 가질까요?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살려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역사적 사건이 복음인 이유는 신앙적 사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인 기술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적 사건에 대한 신앙화의 작업을 통하여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2000년 전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지만 이 사건을 지금 내 앞에서 벌어지는 사건으로 여기는 것이 신앙의 사건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불과 몇 십 년이 지났을 때에 고후4:10절에서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이라고 하고, 고전15:31절에서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합니다.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날마다 죽는다.’라는 말씀은 갈6:14절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하는 신앙 사건입니다.

이 신앙 사건의 의미는 내 마음에 하나님이 안 계시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여기는 마음상태인데, 이 세상 것이 없어서 걱정할 때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채로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즉 수넴 여인의 아들이 엘리사의 방에서 엘리사의 침상에 뉘어져 있었던 것처럼,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채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엘리사가 아이의 주검에 포개지듯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께 우리가 포개지기를 기다리고 계시는데 하나님 경외로부터 이탈한 내가 포개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신데도 불구하고 돈이 없어서 걱정하고 건강으로 인해 걱정하고 자녀로 인해 걱정하고 사람들의 체면을 걱정합니다. 이렇게 세상 것들을 향해 마음이 흘러가려고 할 때마다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어서 엘리사의 침상에 뉘어져 있었던 것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수넴 여인이 엘리사에게 아들을 살릴 것을 요구했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님을 살릴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 신앙의 사건 속에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은 애초에 주님을 위한 길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구원의 사건입니다. 주님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면 애초에 내려오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살려야만 하는 것도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포개질 때에야 드디어 부활도 의미를 가지게 되는데 살려내는 것이 됩니다. 내가 살려내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부활의 과정까지 이끌어 가시기 위해서는 내가 죽으신 주님을 올라타야 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이 나를 위해 일어난 사건인데 내가 올라타지 않고 마음이 세상 것을 향해 움직인다면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십자가에서 죽어 계실 것인데, 오늘 본문이 바로 이러한 하나님 경외의 실질적인 실천요강을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수넴 여인이 죽은 아들에게 가졌던 마음처럼 하나님의 마음은 독생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모습을 바라보시면서, 마치 수넴 여인이 엘리사에게 말한 것처럼 내 아들을 살려내라고 말씀하시는데 엘리사가 아이와 포개졌듯이 우리는 예수님과 포개져야 합니다.

아이를 엘리사의 침상에 뉘었다는 것은 곧 그 침상이 원래 내 자리이고 엘리사는 자기 침상에 눕는 것입니다. 자기 침상에 눕는 것인데 그 침상에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어 있으니 포개지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원래 내 자리입니다. 죄로 찌든 내 자리를 찾아가 누웠는데 십자가 그 자리에 예수님이 누워계시므로 그 예수님과 포개짐으로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리실 때에 나도 같이 부활할 수 있습니다.

수넴 여인이 살아난 아들을 안고 나가듯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승천시키실 때에 나도 포개져서 승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 마음이 예수님을 따라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 경외입니다.

마음이 돈에 가있으면 돈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마음이 자녀에게 가 있는데 자녀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편안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마음을 보내는 것이 하나님 경외인데 하나님께 마음이 가 있으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있고 없고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이것이 경외의 상태이고 구원 받은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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