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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0)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0)’ 갈6:14

지키고 싶어할수록 위험해진다_태승철

by 태승철 · 17-01-20 09:49 · 7,545
누구나 지키고 보존하고 싶은 것들이 있지요. 그런데 그것들을 가장 위험하게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내가 지키고 보존하고 싶다는 뜻은 내 마음이 그것들을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전제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처럼 내 마음이 가서 무엇엔가에 닿을 때, 닿는 정도가 심할수록 그것들은 지키고 보존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마음이 안 가는 것은 지키고 싶지 않은 반면, 마음이 가 닿으면 그 자체가 이유가 되어 지킴에 위험이 임하게 됩니다.

지키고 싶어 할수록 위험해진다

(역대하 10:1~19)

 

 

16. 이스라엘은 왕이 자기들의 말을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보라 하고 온 이스라엘이 그들의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17. 그러나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르호보암이 그들의 왕이 되었더라

18. 르호보암 왕이 역꾼의 감독 하도람을 보냈더니 이스라엘 자손이 저를 돌로 쳐 죽인지라 르호보암 왕이 급히 수레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더라

19.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지키고 싶어 할수록 위험해진다>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지키고 싶어 할수록 위험해진다

본문은 르호보암 왕 때에 이스라엘이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로 나뉘는데 이후로는 북 왕국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오늘은 르호보암 왕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할아버지 다윗 왕은 이스라엘의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확장했는데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의 본래 크기를 회복한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 솔로몬은 온 주변 나라의 왕들에게 부러움을 사고 칭송을 받을 정도로 영광스러운 업적들을 남겼습니다. 르호보암은 할아버지 다윗에 의한 최대의 영토와 아버지 솔로몬의 최고의 영광스러운 상황을 유산으로 받게 된 것입니다. 르호보암의 입장에서 보자면 거저 물려받은 것들로서 다윗과 솔로몬의 입장과는 많은 부분이 달랐습니다.

다윗은 진취적으로 나가서 얻었습니다. 또한 솔로몬도 얻는 영역은 달랐지만 자신이 얻어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고 허락하셨기에 얻을 수 있었던 것이지만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다윗과 솔로몬의 움직임의 방향은 진취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르호보암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진취적인 업적의 결과물들을 받았으므로 지키는 것이 과제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십자가 복음과 성전을 생활화하는 자들이 내게 주어진 것들 중에서 지키고 싶을 만큼 귀중한 것들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느냐를 눈앞에 활짝 펼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르보호암의 마음속을 보면 할아버지 다윗이 만든 영토의 경계선을 지키고 싶었고, 또한 아버지 솔로몬이 이룬 국가의 부와 군대의 강성함과 국제적인 위세와 명성을 지키고 싶었고 지키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 다윗처럼 전쟁을 해서 넓은 영토를 얻으려고 할 필요도 없고, 아버지 솔로몬처럼 지혜를 구해서 또 다른 영역을 개척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국고와 성전창고에는 보물들이 쌓여서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은이 돌같이 흔하고 백향목이 평지의 뽕나무같이 흔한 부를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열두 지파로 이루어진 이스라엘 나라에서 열 지파가 떨어져나가게 됩니다. 마지막에 보면 르호보암이 역꾼 감독인 하도람을 데리고 북쪽 지역으로 가서 이탈하려는 지파들을 달래고 세금을 받기 위해서인데, 이는 곧 르호보암이 현재 상황을 지키고 싶어 했음을 보여줍니다. 할아버지 다윗이 이룬 영토를 보전해야 아버지 솔로몬이 이룬 영광도 보전할 수 있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 지파가 떨어져나갑니다.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우리나라에서 요즘 화두가 된 단어가 있는데 보수와 진보입니다.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해 새누리당이 보수의 자리를 지킬 수 없게 되자,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이 허물어진 보수층을 세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스컴에서는 그의 움직임을 연일 보도하고 있습니다. 정치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어떻게 되었든 우리의 상식선에서 알고 있는 보수는 지킨다.’라는 뜻이고 진보는 발전과 변화를 꾀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있어야 지킬 수 있습니다. 진보 또한 무언가를 가지겠다는 지향성입니다. 지킬만한 것을 갖고 싶어서 진보를 하는 것이고, 이미 갖고 있는 것 중에 귀중한 것이 있기에 보수를 하는 것입니다. 결국 보수나 진보나 보전하고 지키고 싶은 욕망은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인 이야기의 10권에서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주전 3세기에 동서양에서 동일하게 거대한 토목공사가 일어납니다. 동쪽 중국에서는 만리장성이 쌓아졌고, 서쪽 로마에서는 중동에서 영국까지 이르는 로마가도가 만들어지는데 길이가 8만 킬로미터이고 간선도로까지 다 하면 15만 킬로미터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자인 시오노나나미는 로마가도에 승리의 손을 들어줍니다.

만리장성은 지키려는 것이고 로마가도는 진취적인 변화를 꾀하는 것이기 때문에 로마가도가 더 낫다는 것인데 정말로 그런 것일까 이 판정에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로마가도를 통해서 진취적이었던 로마는 중동의 조그만 땅 예루살렘을 점령했다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라는 한 청년에 의해 점령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지키고 싶어 했던 것만큼 귀중하고 강렬한 것이 없다면 먹혀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진취적이라고 해도 내가 가진 것보다 상대방이 더 귀중한 것을 갖고 있다면 정복당하게 됩니다. 칭기즈칸의 위세를 물려받은 몽고가 서진을 계속하면서 조그만 나라인 티벳을 점령하였으나, 오히려 티벳의 라마 불교가 원나라를 통째로 집어삼킵니다.

보수나 진보라는 말을 잘 알고 써야 할 것입니다. 보수라고 하지만 무엇을 지키려고 하느냐에 따라서 계속해서 잃을 수도 있습니다. 진보 또한 발전과 변화를 꾀한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가지고 있는 자들이 지키는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셈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 지키던 것들을 빼앗기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달려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제가 무슨 진보주의자나 되는 것 같은데 저는 복음주의자입니다.

오늘 분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러합니다. 르호보암에게서 열 지파를 떼어내신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계획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내게 주어진 것들 중에서 지키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우선 내 목숨을 지키고 싶어 하고 가족과 이들의 건강을 지키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나라를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으로 지키고 싶어 하면 할수록 더 위험해지게 됩니다. 우리가 지키고 싶어 해서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르호보암에게는 하나님이 그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 허락하신 것들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지키고 싶어 하고 마음이 닿게 될 때에 하나님은 다 떼어내십니다. 진보나 사회주의가 떼어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떼어내시는 것입니다. 특히 선민의 경우 마음으로 지키고 싶어 하는 것들일수록 하나님께서는 떼어놓으십니다. 열 지파가 떨어져나가고 유다와 베냐민 그리고 예루살렘에 살던 여타지파의 소수의 사람들만이 르호보암의 통치아래에 남게 되고 다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들이 있고 지키고 싶은 것들이 있을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왜 나를 지키려고 하지 않는지를 물으십니다.

하나님을 지킨다.’라는 것은 우리 마음을 하나님으로 채움을 뜻합니다. 마음을 하나님으로 채움으로서 우리의 마음을 지키며 동시에 하나님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하나님을 아까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까워하라고 성전을 주셨고, 솔로몬의 영광스러움을 이스라엘 나라에 허락하신 이유는 모든 사람이 성전을 생활화함으로 솔로몬의 영광 코스를 졸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영광은 이 땅에 있는 갖고 싶은 것들이고 지키고 싶은 것들의 집합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그러한 영광을 허락하시고 또한 성전을 주신 것은 그러한 영광을 성전 생활화를 통하여 졸업하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에게 주어져 있는 지혜와 부와 군사력과 국제적 위세와 명성은 지키고 싶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졸업해서 의미 없는 것들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졸업하지 못하고 유급생으로 남아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것에 마음이 닿아서는 안 됩니다. 지키려는 것들보다도 그것들을 주신 하나님을 지켜야 함이 마땅한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이 들어와 계실 자리로 만들어졌는데, 그 자리에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자꾸만 채워 넣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상태가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주신 것들을 떼어내시게 됩니다.

우리는 지키고 싶은 것들로부터 마음을 지켜내야 합니다. 내 마음이 그것에 닿으면 안 됩니다. 지키고 싶다면 내 마음이 그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와야 합니다. 내 마음을 지키지 못해서 닿아버리면 끝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결국 내 마음을 세상에 주어진 것들로부터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 솔로몬의 영광 코스를 졸업하지 못하는 유급자들의 싸움이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에 의해 남북으로 나누어졌습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이스라엘의 분열상황과 동일한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마음대로 가지고 지키라는 것이고, 공산주의는 가진 것을 내놓아서 나눠 갖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산주의 안에도 보수가 있고 진보가 있습니다. 김정은은 지키고 싶어 하는 것이 있는 보수입니다. 그러나 김정은의 억압을 참으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진보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새누리당이 보수라고 하지만 그 안에서도 또한 보수와 진보는 나누어집니다. 친박과 비박으로 나누어지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나누어집니다. 민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당이 진보라고 하지만 그 안에서 또 친문과 비문으로 나눠집니다. 이런 식으로 끝도 없는 싸움이 계속됩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지키려 하지 않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갖기 위해 예수님을 따라서 하늘로 올라가지 않는 한, 이 땅 위에서 보수와 진보의 싸움은 끝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진보와 보수의 싸움뿐만 아니라, 우리가 개인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것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떼어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정하신 선민일수록 더욱 더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떤 것에 대해서도 지키려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키려는 것이 죄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나 자신의 변호까지도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법정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마지막 변호를 허락 받았을 때에,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내게 허락된 목숨까지도 지키시고 발전시키시고 섭리하시는 주체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내를 지키지 않고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이 하나님을 지키려함에 전력투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지키기 위해서 아내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내까지도 버리면 아브라함이 버린 아내를 하나님이 지키셔서 끝내 아브라함 옆에서 살다가 죽게 하셨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버렸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지켜주셨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셨던 모든 약속의 당사자로서 이삭을 선택하시고 약속을 실현시키십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지킬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키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가볍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나라를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내 마음이 나라에 닿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첩경입니다. 이처럼 이 땅에서 내게 허락된 것 중에 지키고 싶어서 마음이 닿을 수밖에 없는 것들로부터 지켜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떨쳐내실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을 들으시는 분들이 나라보다 앞서 하나님을 지켜내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기만 한다면 나라 안팎의 일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입니다. 나라를 지키려는 마음을 갖지 말고 내 마음으로 하나님을 지켜내면 됩니다. 대한민국의 운명은 하나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잊지 않으신다면 삶이 가벼워질 것입니다. 아무것도 지키지 않으려는 자에게서만 하나님의 지키심과 하나님의 진보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보수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지키십니다. 진보의 주체도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발전과 변화를 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지켜낼 때에만 가능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속적으로 붙잡아야만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내게 허락하신 것들에 마음이 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닿으려는 나를 십자가를 통해서 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오직 하나님의 보수성과 진보성만이 우리의 삶에 나타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지킨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보수가 무리수를 두면 극우가 되고, 진보가 무리수를 두면 극좌로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성향은 지키거나 발전할 자격도 권한도 없는 자들이 지키려 할 때에 나타나는 일입니다. 또한 발전을 꾀할 수 있는 능력도 자격도 없는 자들이 발전과 변화를 얘기할 때에 극좌적 성향으로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는 것이 복음의 말씀입니다. 십자가 생활화를 통해서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로부터 내 마음을 지켜내는 것이고 내 마음으로 하나님을 지켜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에 의해서 적재적소에서 보수와 진보의 사건들이 우리 삶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진정한 보수의 주체이시고 진정한 진보의 주체이신 우리 하나님만을 우리 마음이 지켜내기 위하여, 오늘도 하나님이 이 땅에서 허락하신 지키고 싶은 모든 것들에 대하여 내 마음을 지켜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