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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0)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0)’ 갈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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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혀에 천국 아니면 지옥이 닿아 있다_태승철

by 태승철 · 23-09-07 08:26 · 418

 

www.everyday01.com- 십자가(0,1)복음방송

 

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내 혀에 천국 아니면 지옥이 닿아있다>의 줄거리 :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사람의 혀가 지옥에 연결되어 있어서 말을 할 때마다 지옥 불이 나오고 악과 독이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지옥의 불을 받아 말로써 뿜어낼 때 마음의 상태를 보면 바로 선생의 마음가짐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그 뿌리를 내린 곳이 천국이냐 지옥이냐에 따라서 두 종류의 인격적 나무로 비유될 수 있다고 하십니다.

 

 

내 혀에 천국 아니면 지옥이 닿아있다

 

(야고보서 3:1~12)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본문은 우리가 생활 현장에서 하는 말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갖게 하는 내용입니다. 세상에는 사람이 하는 말을 주제로 쓴 글이 많겠습니다만 이렇게 강렬한 표현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본문을 보면 말을 상징하는 혀가 반복해서 언급됩니다. 우리의 말은 천국에 닿아있든지 지옥에 닿아있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내가 하는 말이 지옥에 닿아있다면 인생 전체를 불행의 불길로 태워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내용의 근본 주제는 믿음이 끊긴 상태에 대한 염려와 충고입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말을 합니다. 야고보 장로는 어떤 말인지를 구분해서 하라는 정도가 아니라, 말 전체에서 믿음이 끊겨서는 안 됨을 강조합니다. 믿음이 끊긴 상태에서 하는 말은 지옥에 닿아있는 상태에서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것은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사실입니다. 내가 지금 하는 말이 지옥에 닿아있는 상태의 말이라서 내 인생의 행복을 다 태울 수 있는 불이라는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야고보 장로는 인생을 태워버리는 불이 바로 지옥에서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6절을 보면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 또한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마서 310절을 보면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하였고, 이어지는 13~14절에서는 의인이 아닌 죄인의 상태를 묘사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의 내용과 일치하는 말씀입니다. 본문 8절에서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라고 하였던 바와 같습니다.

 

이러한 내용의 본문은 말이 지옥에 닿아있거나 천국에 닿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그런데 말이 천국에 닿아있다는 이야기는 알겠지만, 지옥에 닿아있다는 말은 사뭇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믿지 않고 살면 지옥에 간다는 말은 써도 지옥에 닿아있다는 말은 잘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닿아있다라는 말은 어떤 말일까요? 우리는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임을 고백합니다. 그럴 때 마음은 세상에 대해 죽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가게 됩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마음이 머무는 곳은 보좌 우편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하나님을 직면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되고, 이것이 바로 천국과 연결이 된 상태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직면하는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 천국과 연결되어 있음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말을 할 때 천국과 연결된 효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태어나서 철이 들고 죽을 때까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내가 예수님 안에서 하늘로 올라가 직면해야 할 하나님의 생각 속에 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본래 인간이 혀를 움직여 입술을 열어 하는 말은 하나님의 생각 속에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가장 온전한 인간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신 말씀이 어떤 상황에서 나왔는가를 들여다보면 천국과 연결된 효과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82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 하시되라고 말씀하셨고, 또 이어지는 28절을 보면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라고 말씀하셨던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저주에서 빠져나오고 죄가 없는 상태의 온전한 인간의 말은 단 한마디도 하나님이 준비해 놓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반대로 저주와 죄에 빠진 상태에서는 하나님이 내 입에 담아주시기 위하여 준비해 놓으신 말들이 다 버려지고 무산됩니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이 연결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지옥에 닿아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천국은 누구나 바라는 곳입니다. 당장 천국에 가고 싶지 않은 사람조차도 천국이 좋은 곳이라는 사실은 말로라도 인정할 것입니다. 누구나 죽은 다음에 천국 가기를 희망합니다. 다만 우리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생활화하는 자들입니다. 마음이 지금 당장 천국으로 가서 연결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흘러가야 연결이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굳이 지옥으로 마음을 보내서 연결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고보 장로나 사도 바울은 우리의 말이 지옥에 닿아있음을 경고합니다.

천국에 대해서는 마음을 보내고 싶다는 의식적 행위가 가능하지만, 지옥에 대해서는 마음을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닿아있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옥이 위장전술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옥으로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세상천지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사탄은 지옥의 입구를 아름답고 좋은 것으로 꾸며놓았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이 좋아 보이게 합니다.

가장 대표적이고 흔한 예가 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613절에서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사람들은 돈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좋아함이란 어느 순간 좋아했다가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좋아하는 마음의 흐름은 계속 유지됩니다. 마음이 돈과 연결된 상태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야고보 장로와 사도 바울은 이처럼 하나님이 아니라 돈을 좋아해서 마음의 흐름이 유지되면 지옥과 연결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돈을 좋아하면서 하는 말이란 지옥과 연결된 상태에서 하는 말마다 지옥의 불이 되는 상태라고 하였습니다. 돈과 연결된 상태에서 하는 말로 인생은 더럽혀지고 행복은 불타서 재가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돈이 좋게 보이는 이유는 지옥의 위장전술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예수님과 함께 세상에 대해 죽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좋다는 것들을 따라가지 않고 좋음은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뿐임을 알았다면 이제 예수님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예수님과 함께 세상에 대해 죽지 못한다면 마음은 이 땅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땅에서 좋게 보이는 대상에게 마음은 향하게 됩니다. 부모라면 자녀의 형통이 좋게 보일 수 있습니다. 직장인은 승진이나 더 많은 월급이 좋아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마음이 세상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좋아 보이는 것은 모두 지옥의 위장전술일 뿐입니다.

건강이 좋아 보여서 마음의 흐름을 유지하는 사람이 입을 열면 건강에 대한 이야기만 나옵니다. 돈이 좋아 보여서 마음의 흐름을 유지하는 사람은 입만 열면 돈 이야기입니다. 자녀의 형통이 좋아 보여서 마음의 흐름을 유지하는 사람은 입만 열면 자녀 이야기입니다. 다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서 하는 말이고, 돈을 많이 벌어서 멋지게 살고 싶어서 하는 이야기라고 하겠지만 실은 이 모든 말들은 지옥에서 나오는 불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무서운 일인지 알지 못한 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갑니다.

 

한편 3~5절을 보면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말에 세 치 혀라는 관용어가 있습니다. 한 치가 2~3cm 정도이니 세 치면 6~9cm의 길이입니다. 혀는 몸에서 작은 기관일 뿐입니다. 그러나 말의 입에 재갈을 물려 순종하게 하고, 거대한 배를 키로써 조종하며, 작은 불이 숲을 태워버리듯이 작은 혀는 몸의 어떤 기관보다 큰 힘을 발휘합니다. 지옥과 연결된 상태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은 내 인생 전체의 수레바퀴를 불사르고 나 전체를 더럽힐 수 있다는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무엇인가를 소원하고 좋아하여 가지고 싶어 할 때 그 대상과 연결이 됩니다. 야고보 장로는 이러한 인격의 상태를 나무에 비유합니다. 마음이 흘러가면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내 인격의 열매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흘러가면서 연결된 대상은 인격의 뿌리를 형성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716절에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라고 말씀하시며 사람의 인격을 나무에 비유하셨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돈을 좋아한다면 한때 좋아하고 마는 대상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마음이 흐르는 대상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돈이라는 대상에 뿌리를 내린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돈은 지옥의 위장전술에 불과합니다. 마음이 돈에 연결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지옥과 연결된 것입니다. 돈을 좋아하면서 하는 모든 말이 지옥의 불이 되어서 나오게 됩니다. 불을 뿜는 용처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리워야단이 등장하는데 마귀를 상징하는 용을 가리킵니다. 전설 속에 나오는 용은 불을 내뿜습니다. 중국에서는 용을 상서로운 동물로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임금의 옷을 용포라고 불렀던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용은 악마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 마음이 이 세상의 것들을 좋아하여 흐름이 지속될 때 뿌리가 형성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지옥의 불을 뿜는 용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그 지옥의 불이 제일 먼저 불사르는 것은 다름 아닌 내 인생의 행복입니다.

앞에서도 혀에 재갈을 물리라는 말씀이 나왔습니다만 우리 마음의 흐름이 연결된 대상이 세상에서 좋다고 여겨지는 것들이라면 마음은 지옥과 연결됩니다. 이렇게 마음이 지옥과 닿은 상태에서는 말을 하면 할수록 지옥의 악독과 저주의 불이 많이 나오게 됩니다. 반대로 십자가 예수님 안에서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입고 하늘로 올라가서 하나님과 연결된 상태가 되면 예수님과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이 내게 넣어주시는 생명수와 같은 말들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하늘의 생수가 강처럼 흘러나오게 되니 말을 할수록 하늘의 기운이 퍼져나가게 됩니다. 이러한 말은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마음의 평강을 지켜주는 성이 됩니다. 설령 그것이 다른 사람을 상대하며 나오는 나와 관계없는 말일지라도 그것에 담긴 하늘의 기운은 나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은 흐름입니다. 내 마음이 지속적으로 지옥과 연결되어 있다면 지옥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말을 하게 됩니다. 반대로 내 마음이 예수님 안에서 하늘과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천국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말을 하게 됩니다.

말과의 관계에서 우리 마음의 흐름이 하늘에 대해 끊겼을 때 나타나는 대표적 현상은 선생의 마음가짐을 갖는 것입니다. 1절을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라고 하였습니다.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는 것은 실제 선생이라는 직책을 갖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말을 할 때 선생의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선생의 마음가짐이란 내 말이 상대방을 바꾸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는 상태입니다. 선생은 제자가 지금과는 다른 사람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의도가 담겨져 있는 말을 합니다.

지옥과 연결된 상태에서 하는 모든 말의 특징은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이익을 취하기 위하여 말을 할 때는 의도가 담겨있습니다. 그러한 의도를 담은 말의 대표적인 경우가 선생의 마음가짐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대할 때든, 배우자가 서로를 대할 때든, 이웃을 대할 때든 내게 있지만 그에게 없는 것을 발견하면 선생의 마음가짐을 갖게 됩니다. 그것이 그 사람을 지금 상태에서 더 나은 상태로 이끌려고 하는 의도이든, 그 사람의 잘못됨과 부족함을 지적하려는 의도이든 의도를 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담기는 의도는 겉으로 보기에 선하든 악하든 전부 지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누가 봐도 선한 의도에서 한 말일지라도 그 말 자체가 지옥 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우리의 의도가 담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하늘 아버지의 생각 창고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과 같을 수 있어야 합니다. 도가의 노자는 물은 인위성을 담고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 말대로 물은 시냇물이든 계곡물이든 강물이든 흐름 속에 의도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말 또한 그럴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이 당신을 배반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제자들의 영적 수준을 높이기 위한 의도로 말씀하신 적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들은 제자들을 대할 때든, 군중을 대할 때든, 바리새인을 대할 때든, 로마인을 대할 때든 항상 하나님 아버지가 하고 싶으신 생각을 물처럼 흐르게 하셨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개별적 의도는 담기지 않은 채 그들에게 하나님의 생각만이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또한 그럴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 때 십중팔구는 선생의 마음가짐을 갖기 마련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멋진 모습으로 자녀를 끌고 가려는 의도를 담은 말을 합니다만 이것은 지옥 불을 뿜어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부모가 좋은 의도에서 말을 해도 자녀가 싫어하며 화를 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자녀에게 지옥 불을 댕기는 것과 같은 말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비단 자녀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가르치려는 선생의 마음가짐으로 말할 때 듣는 사람들은 화가 납니다. 겉으로는 수긍하는 것 같아도 화를 참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에게 지옥 불을 던져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혀는 계곡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혀라는 계곡을 통해서 하늘로부터 흘러들어온 생각이 말로 흘러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마음이 하늘과 연결이 되면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마음이 세상 것들과 연결이 된 상태에서는 말만 하면 후회할 일을 하고 실수를 하게 됩니다. 말 한마디하고 나서 후회하고, 말 한마디로 사람 관계가 깨어질까 걱정하고 불안해하느니 십자가를 붙잡고 세상에 대해 죽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하나님 아버지만을 직면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버지만이 좋습니다. 아버지만이 나의 소망입니다.’라고 고백하며 돈을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그 마음을 환전시켜서 아버지를 좋아할 수 있습니다. 하다못해 무엇인가 먹고 싶은 기분이 들 때도 그 마음을 돌려서 내가 이것을 먹고 싶어 하는 것보다 아버지를 더 좋아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만큼 더 아버지를 갖고 싶습니다.’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 중에 나오는 말에는 내 의도가 담기지 않게 됩니다. 계곡의 맑은 생수같이 하나님의 생각을 끊임없이 샘솟게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313~14절에서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악독한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은 이 세상 것을 좋아했을 뿐입니다. 세상 것을 좋아 보이게 하는 지옥의 위장전술에 속아서 마음이 지옥과 연결되고 닿게 되었음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이 무섭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무언가 얻고 싶은 것이 있어서 말에 의도를 담게 되었다면 지옥과 연결된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함으로써 저 사람이 나를 좋게 생각하기를 원한다든지, 내가 이렇게 말함으로써 저 사람이 생각을 바꾸기를 원한다든지, 내가 이렇게 말함으로써 저 사람이 나에게 유익을 주게 되기를 원한다든지, 어떤 식으로든 의도를 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만나서 말을 할 때 의도를 담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말씀을 뱉어낼 수 있으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마음이 십자가를 기억해야만 합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죽은 자임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에 대해 죽었다는 것은 그에게서 기쁨과 채움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 자체가 사람 관계에서는 누군가에게 어떤 것도 얻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자가 다른 사람을 만날 때는 어떤 의도가 담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말할 수 없는 상태에서 예수님 따라 하늘로 올라가서 하나님만을 소원할 때 다른 사람에게 아무것도 얻을 필요가 없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이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라고 묻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물 흐르듯이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내 말을 거부하든 받아들이든 내 입은 하늘 말씀의 샘물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일은 십자가를 늘 기억할 때만 가능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자라는 자아의식이 유지되면 내 입은 하늘에서 하나님이 생각하신 일들이 샘솟는 옹달샘이 됩니다. 그럴 수 없다면 지옥과 연결되어서 악독과 저주의 불을 뿜어내는 지옥의 구멍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는 인격의 나무는 마음이 좋아해서 소원하는 대상에 의해 결정됩니다. 좋아하는 대상이 세상 것이라면 반드시 마음은 지옥에 연결됩니다. 지옥에 연결됐다는 증거는 상대방에 대해 의도가 담긴 말을 함으로 나타납니다. 그 대표적인 형태가 선생의 마음입니다. 그 사람을 내게 유리한 모습으로 바꾸고, 내가 원하는 대로 바꾸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드리자면 아침마다 진행되는 오늘의 번제에도 아무런 의도가 없느냐는 질문을 하실 수 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의 입장에서 제가 방송을 통해 하는 말 속에 사람을 바꾸고자 하는 의도를 담지 않게 된 시점이 있습니다. 저는 단순히 목사님들과의 대화나 성도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이게 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말을 잘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전에는 목회를 할 때 어떻게 하든지 사람의 변화를 겨냥해서 말씀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항상 변화를 염두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복음 방송을 시작하면서 공중에 말씀을 뿌리기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누가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 말씀을 듣는 사람이 변할 것을 겨냥하고 목표 삼지 않기로 했습니다. 성경을 보며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만을 전하고, 내 의도가 들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하시는 대로 전할 뿐입니다.

예수님의 경우를 보면 객관적인 영적 세계의 사실들을 말씀하실 때가 있었으며, 제자들을 꾸짖으실 때도 있었으며, 바리새인을 저주하실 때도 있었으며, 세리와 창기들을 보듬으실 때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순간에 개인적 의도를 담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성전을 정화하시며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라고 말씀하시던 순간조차 의도를 담지 않으셨습니다. 꾸짖기도 하시고 보듬기도 하시던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언제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의도가 담겨있었을 뿐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기준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 또한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오늘의 번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꾸짖는 어조로 말씀을 드릴 때도 있을 것이고, 보듬는 어조로 말씀을 드릴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여러분을 달래거나 설득해서 십자가를 붙잡고 사는 사람이 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제가 전하는 말씀에 여러분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담겨 있음을 믿으며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처럼 100% 순수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 또한 죄인 됨이 여전히 활성화되고 있는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을 알고 전하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도 삶에서 하늘과 연결된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족을 대할 때든, 이웃을 대할 때든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입에 담아주실 말씀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러하신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여러분의 의도 대신 하나님의 의도가 생수처럼 흘러나오는 청정 계곡의 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 우리의 입이 이 세상 누구를 만나든 하늘 샘물이 흘러나오는 입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좋아하며 연결됨으로써 지옥과 연결되어 불을 뿜고 악독과 저주를 뿜어내는 삶을 오늘 당장이라도 칼로 무를 자르듯이 잘라낼 수 있도록 강력한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