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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0)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0)’ 갈6:14

무형문화재 ‘출애굽’ 기능보유자_태승철

by 태승철 · 16-07-20 14:51 · 7,945

금년 3월까지 129건의 중요무형문화재가 지정된 가운데 어떤 경우는 기능전수자가 없어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인류 역사상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형문화재의 기능 보유자로서 인정되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신(神)으로서 '출애굽'의 기능보유자입니다. 이 경우 전수자 걱정이 불필요한 이유는 얼마든지 이 신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들어진 기능보유자로서의 신에게 사람들은 갖가지 이름을 붙입니다. 심지어 '여호와 하나님'까지 말이지요.

무형문화재 출애굽기능보유자

(열왕기상 12:25~33)

 

 

25.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26.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30.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31.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32. 여덟째 달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

33.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무형문화재 출애굽기능보유자>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무형문화재 출애굽기능보유자

일본 도쿄에 민예관(民藝館) 박물관이 있습니다. 금년 4월부터 6월까지 80주년을 기념하여 조선 공예의 아름다움이라는 특별전을 열었는데 무려 1600점에 달하는 조선 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선보였습니다. 이런 공예품이 우리나라보다도 일본에 더 많을지도 모르겠는데 엄청나게 가져갔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지만 이러한 역사적 가치평가는 뒤로 하고 이 전시를 위한 2년간의 준비과정을 살펴봅니다.

이 전시를 위해서 우리나라의 박명배 씨와 양석중 씨가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박명배 씨는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小木匠) 기능보유자입니다. ‘소목장이란 나무로 세간살이를 만드는 목수일입니다. 이 분이 일본에 가서 보존처리가 시급한 목칠공예품 10건에 대해 보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이 고려와 조선의 것 1600점을 가져갔지만 아무나 보수를 할 수 없었습니다. 일본에도 목수가 있고 기능보유자들이 있겠지만 아주 특수한 기능이 없다면 보수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박명배 씨와 조교로서 양석중 씨가 따라가서 보수를 했다고 합니다.

유형문화재에 반대되는 것으로 형태가 없는 무형문화재를 지정하는데 기능보유자들에게 합니다. 지금 129호까지 있다고 합니다. 1호인 종묘제례악으로부터 시작하여 공예품을 만드는 분들도 있고 양주별대산놀이, 남사당놀이나 심지어 무술 중의 하나인 택견이나 향토 술 담그기 등 기능을 보유한 무형문화재들을 국가에서 지정하고 있는데 129호는 아리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기피하기 때문에 전수자가 없어서 걱정이라고 합니다.

 

인류에게 있어서 보편적으로 국가에서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기능보유자가 있는데 바로 신입니다. 이 지구 위에 수많은 민족과 나라와 개인들이 섬기는 모든 종교의 신들은 다 인간이 만들어낸 기능보유자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만이 만들어진 신이 아니라 인간에게 다가오신 유일한 신이십니다.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유일한 살아계신 참 신은 예수님의 아버지 되시는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 외에 모든 신들은 기능보유자로서 인간이 만들어낸 신들입니다.

이러한 신들은 출애굽으로 이름 지어질 수 있는 무형문화재를 표현할 수 있는 기능보유자들입니다. ‘출애굽은 상징적으로 말해서 문제로부터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입니다. 나를 노예처럼 묶고 있는 문제가 애굽인데 이것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은 상징적으로 포함하는 범위가 엄청나게 넓습니다. 인간은 당면한 모든 어려움으로부터 빠져나오고 싶어 하기 때문에 출애굽처럼 출문제 출어려움 시켜줄 신을 만들고 기능보유자로서의 자격을 부여합니다.

문제는 유일한 참 신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기능보유자에게 붙이는 일이 선민과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를 출() 문제 시켜줄 기능을 기대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선민에게서 일어나는 가장 처참하고 추악한 일인데 오늘 본문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문제해결을 위해서 인간이 만든 무형문화재의 기능보유자에게 붙이는 일이 선민의 나라 안에서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북 왕국 이스라엘의 1대 왕인 여로보암에 의해서 일어났지만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되시는 하늘에 계신 그분을 가리키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기능보유자로서 지정하고 종교생활을 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행위가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자행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로보암의 죄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여로보암이 열 지파의 왕이 됩니다. 열두 지파 중에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를 뺀 숫자입니다. 성경에서 베냐민 지파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이유는 이전에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에서 불량배들이 악한 일을 행한 것으로 인해 동족상잔의 전쟁이 일어남으로 인해서 남자 600명만 남고 다 죽어서 숫자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고, 또한 유다 지파와 접해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하나로 묶어서 표현한 것입니다. 여로보암이 이렇게 나라를 세웠는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세겜에 수도를 세우고 요단강 동편의 브누엘에 수도를 방어하기 위한 성읍을 만들기까지 했는데 성전이 예루살렘이 있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 년에 세 번씩 성전을 찾아가고 또한 제사를 드리고 싶을 때마다 성전을 찾아가야 했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가야만 했고 그리워했습니다. 이러면 민심이 집중되지 못하고 세월이 지나다보면 왕권은 흐지부지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정치인으로서는 얼마든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게 됩니다.

28절에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라고 합니다. 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름을 출애굽의 하나님이라고 붙인 것입니다.

그러면 질문이 생깁니다. 정말로 이스라엘 선민들은 이 금송아지를 보고 출애굽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믿었을까 의심이 생깁니다만, 여로보암의 의도대로 아주 성공적인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30절에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라고 합니다. 단은 멀리 떨어진 곳이었는데 백성들은 그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경배를 했습니다. 어떻게 금송아지를 출애굽의 하나님이라고 했던 여로보암의 선언이 선민들에게 먹힐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31절에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라고 하는데 레위인들은 여로보암의 종교정책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모두 남 유다로 갔던 것 같습니다. 일반 백성에게 먹힌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여로보암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에 탁월한 설교가였던 것 같습니다. 요즘 그렇게 목말라하는 숫자적인 종교적 부흥을 일으킨 사람입니다. 백성들이 그 먼 단까지 가서 경배를 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이 여로보암의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탁월한 점이 어디 있었던 것일까요? 금송아지 사건은 500여 년 전 출애굽을 한 1년 뒤 시내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대면하고 있을 때에 산 아래의 백성들이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금송아지를 만들게 됩니다. 아론이 주동이 되어 금송아지에게 출애굽의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와 오늘 본문의 금송아지 사건에는 이름의 의미가 다릅니다.

이전에는 출애굽을 경험한 사람들이 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출애굽 때에 홍해가 갈라지고 애굽이 초토화되는 엄청난 사건을 경험했지만 하나님을 보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모세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인데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자 조급해지고 불안한 상황에서 자기들이 경험한 출애굽 사건의 주체이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형상화 했던 것입니다.

여로보암 사건에서는 직접 체험하지 않은 500년 전의 사건이 의미가 있으려면 상징과 비유가 되면서 이전보다 더 강력한 파급효과를 발휘해야 되었습니다. ‘출애굽 사건이 직접 체험한 것이 아니라 상징이 되었다는 얘기는 애굽의 노예상태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문제입니다. 우리가 빠져나오고 싶어 하는 모든 문제를 상징하고 비유하는 것입니다. 삶 전반에 걸쳐서 출애굽 사건이 적용되지 않는 삶의 현장은 없기 때문에 매일매일 출애굽을 바라게 됩니다. 언제나 내가 지금 묶여있는 문제가 애굽으로 상징되므로 그 애굽으로부터 탈출시켜 줄 기능보유자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문제의식을 먼저 갖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능보유자를 찾을 때에 서두에 말씀드린 박명배 씨와 양석중씨 그 기능을 누가 보유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 기능만을 가지고 무형문화재로 전수되고 있다면 안심하는 것인데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에게 당장 급박한 돈 문제가 있습니다. 이럴 때에 확실하게 그 돈 문제로부터 탈출시켜줄 기능보유자가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좇게 되어있는데 여로보암이 이런 탁월한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출애굽은 직접 체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징이 될 수밖에 없고, 사람들은 매일 같이 출애굽을 위한 기능보유자를 찾고 있었기 때문에, 여로보암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출애굽의 기능을 가진 하나님으로 선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민으로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버리지 않았기에 양심의 가책이 없었습니다. 금송아지를 보면서 나의 돈 문제 건강 문제 자식 문제로부터 탈출시켜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처럼 삶 전반에서 금송아지 숭배가 생활화되도록 만들었던 것인데 여로보암은 정치가가 아니고 요즘식의 탁월한 설교가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종교의 부흥이 일어나서 사람들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단까지 가서 문제해결의 기능보유자인 금송아지를 찾아 가서 이 문제로부터 탈출시켜 달라는 기도를 하게 되는데 이러한 일들이 성전과의 차단을 통해서 강화됩니다.

 

성전이 있으면 금송아지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지라도 달라질 여지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의 기능은 우리 마음을 오버랩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지성소에는 법궤와 그룹이 있었습니다. 법궤는 말씀하시는 하나님, 인격적이신 하나님을 뜻하므로 그 하나님이 내 마음에 계셔야 함을 뜻합니다. 그룹은 그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기 때문에 내 마음은 하늘로 올라가야 함을 뜻합니다. 지성소 앞에는 분향단이 있었는데 분향단은 기도를 뜻하고 이는 곧 하나님을 가지기 위해 추구하는 것입니다. 떡상은 하나님으로 배부르기 위해서 추구하는 것이고, 등대는 눈을 떠서 온 세상의 사건과 사물과 모든 대상의 배후에서 하나님을 명확하게 보는 것입니다. 성전 바깥에는 야긴과 보아스 두 기둥이 서 있습니다. 백합화에서도 하나님을 발견하고 참새에게서도 하나님을 발견하고 빌라도의 배후에서도 하나님을 발견하고 가룟 유다에게서도 하나님을 발견하므로 이 세상 모든 일은 야긴 그가 세우실 것이고, 보아스 그에게는 능력이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대야가 있고 번제단이 있었습니다. 내 마음의 지성소에 돈을 들여놓고 건강을 들여놓고 형통을 들여놓고 이 땅의 성공을 위해서 기도로 추구해 가면서 배 부르려고 했고 이 땅의 것을 얻기 위해서 판단과 분석과 생각을 하면서 등대를 밝히려고 애를 쓰면서 살았던 것을 대야와 물두멍이 뜻하는바 물로 씻어야 될 더러움이었고 번제단에서 죽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전에서 마음을 오버랩함으로서 잘못된 금송아지 숭배에 대한 신앙으로 가던 것을 깨닫고 깨뜨리고 돌아서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성전을 차단시키자 보이는 것은 지금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것만이 중요해진 것입니다.

 

12:13절에 예수님께 나와서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라고 합니다. 동생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나와서 정당한 요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정당한 요구를 하는 동생을 향해서 15절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라고 말씀하시는데 문제의식이 죄악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 문제가 없습니다. 돈이 없는 것은 그저 객관적인 사실이지 문제가 아닙니다. 몸이 불편한 것도 문제가 아닙니다. 다리가 아파서 절름거리고 가야할 곳을 못 간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가지 말아야 할 곳이기 때문에 다리를 아프게 해서 못 가게 하신 것입니다.

야긴과 보아스가 의미하듯이 그가 세우실 것이다, 그에게 능력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는 사람에게는 삶에 있어서 문제의식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나 잘못된 재판을 하는 빌라도를 보시면서도 문제의식을 갖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문제의식이 당신을 통해서 표현되고 해결점을 찾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문제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이고 삶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공간이 되어버립니다. ‘내 몫을 찾아 달라고 부탁하는 마음은 돈에 붙어있음으로 인해서 혼돈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내 삶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갖는 것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에 십자가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문제의식을 갖는 나를 죽이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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